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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백  님의 글입니다.
교회적 사명 감당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2008-07-19 12:36:39, 조회 : 1,171, 추천 : 174

  안녕하십니까?  협동전도사로 우림교회를 섬기고 있는 차기백입니다. 제가 獄에 갇혀 수용자와 함께 한 생활도 벌써 10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전 여간해선 獄에 관련된 이야기를 잘하지 않지만 감옥하면 떠오르는 심상이 지옥의 희미한 투영이라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같습니다. 징역 1년만 선고받아도 절망하는 수용자들을  보면서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감당해야하는 불신자들의 운명이 떠올라 가슴아파하며 눈물흘리는 일은 저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왜 태어난지도 모른채 그냥 살면서 물질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그것을 목적으로 일희일비하다가 안개처럼 사라져가는 주위의 인생들을 보면서 죄에서 태어난 인간의 비참함은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참상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참 진리를 소유하지 못했던 철학자들조차도 비본래적 삶을 청산하고 본래적 삶을 살아야함을 자각했던 것같습니다. 철학자들은 참 진리를 발견하지는 못했어도 참 진리를 갈망했던 것입니다.

  교회의 부패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참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함을 주장하던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유형과 발전단계를 세가지로 분류했는데 이 말은 언제나 제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기에 몇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그의 분석에 있어 첫번째 단계는 미적 단계입니다. 표상적으로 드러난 세계와 자원에 대해 집착하며 눈에 드러난 것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으려고하는 타입의 사람들이 1단계 유형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물질과 욕구의 만족을 추구하며 이런 것들의 충족을 통해 인생의 행복을 담보하려는 1단계 유형의 사람들은 자원의 확장과 그로인한 만족을 인생 최대의 목적과 목표로 삼습니다. 보통 이 단계에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있기에 세상은 물질 만능주의와 이기주의, 쾌락주의가 만연하지 않는가 생각해볼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1 단계에서 인생의 허무함과 존재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보는 사람들은 2단계로 도약하게 되니 2단계는 윤리적 단계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보람있고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을것인가에 관한 성찰이 2단계의 주요 테마입니다. 물질과 욕구충족만으로는 인생의 행복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인간이 좀더 수준높은 가치를 추구하며 참 인간으로써의 본래적 모습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 2단계에서 펼쳐집니다. 투쟁하는 것보다 희생하는 것에서, 미워하는 것보다 용납하는 것에서 참다운 행복이 찾아온다는 너무나도 당위적인 명제가 윤리적 단계에 있는 인간에게는 삶에서 실천을 통해 체험됩니다. 사랑과 봉사의 아름다운 미덕으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의 참된 道를 추구하게 되는 2단계가 낯설고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아직까지 윤리적 단계에조차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참 신자는 참 인간됨을 인격으로 드러내놓는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2단계의 윤리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같습니다.

  그런데 윤리적 단계에서 삶의 보람과 가치를 찾던 사람들은 한계상황에 부딪치게 됩니다. 바로 유한한 인생에 대한 자각입니다. 인간은 소멸과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유한자일 뿐이라는 자각은 인간을 '不安'으로 인도합니다. 사람은 어떤 구체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용기를 가지고 투쟁하여 극복하기도 하지만, 이런 종류의 불안은 그런 용기만을 가지고 극복할 수 없는 궁극적 불안이요 인간한계성에 대한 피조물적 자각입니다.  이 자각을 통해 인간은 3단계인 '종교적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죽음을 넘어서 참존재자에게로의 귀의를 시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로의 귀의가 참 신을 만나는 보증이 될 순 없지만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에게는 생명의 길이 됩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아 구원받은 우림의 지체들은 매일 예배 시간을 통해 참 하나님을 만나서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고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은사는 없습니다. 전 세계에 존재했다가 사라져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류의 석학들이 그렇게 찾기를 원했던 진리의 도가 예배시간에 명료하게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강의실에서 전수되는 메마르고 차가운 지식이 결코 아닙니다. 진리는 인생의 삶을 풍요롭게 적셔주는 생명수가  흐르고 있는 살아있는 지식입니다. 바로 야다(경험하여 알다)의 지식이요 모든 어두움과 사슬에서 자유케하는 빛된 지식입니다. 매순간 이 진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반드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야 합니다. 생명이 없어 메마른 땅에 생명수의 강물을 흘려보내주어 영혼을 살리고, 미움과 증오로 얼어붙은 대지에 사랑의 온기를 쬐어줌으로 녹여야 합니다. 추한 자기사랑만이 횡행한 곳에 주님의 영광의 아름다움을 비춰주는 증인이 되어 주님이 우릴 보실때 환한 미소를 지으실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생명이 없어 메마른 곳은 어디입니까? 미움과 증오로 얼어붙은 곳은 어디입니까?  자기사랑만이 횡행하고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이런 특성이 밀집되어 응축된 곳은 바로 감옥입니다. 이 곳은 소망도 사랑도 없는 동토의 땅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눈에 보이는 표상의 세계속에서 만족을 얻어보고자 미적 단계의 과도한 욕심을 잉태하여 죄를 낳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감옥입니다. 또한 죄가 장성하여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조차 있는 곳이 감옥입니다.
  
  이런 곳에 주님은 우림의 성도님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얼마나 값진 부르심입니까? 우린 이 소명에 응답하여 맡겨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교정선교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들도 많은 상황에 주님께서는 성도님들께 우림의 빛을 발하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빛은 빛을 발하고 어두운 곳을 밝힐 때에만 존재적 가치가 있는 것이지, 스스로 빛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두운 곳을 밝히지 못한다면 그 빛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을 뿐입니다. 생명 살리는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것입니까?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줄 수 있는 이 값지고 소중한 기회!  인생의 벼랑 끝에서 이제야 회심하고 참 인간, 참 진리의 도에 목말라하는 소외된 영혼들을 위해 우림교회가 앞으로 나아가길 소망해봅니다.

                                              서울 D.C 에서  갇힌자들의 목자인 차기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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